부모에게 돈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차용증도 작성했고 실제로 몇 년 동안 원금이나 이자를 갚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많이 갚았으니까 남은 돈은 그냥 됐다.”
가족끼리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받은 돈도 아니고 분명히 빌린 돈이었으니, 남은 빚을 부모가 받지 않는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금에서는 여기서 상황이 한 번 바뀝니다.
처음에 실제로 빌린 돈이라면 차용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부모에게 2억원을 빌렸다고 해보겠습니다.
차용증을 작성했고 자녀에게 실제 상환 능력도 있었습니다.
이후 약정한 내용에 따라 부모에게 돈을 갚아왔다면 처음 2억원이 오간 거래는 차용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와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그냥 주는 행위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앞선 글에서 차용증보다 실제 상환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존재하던 빚을 나중에 없애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남은 1억원은 안 갚아도 된다”고 한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계산해보겠습니다.
부모에게 처음 빌린 돈이 2억원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자녀가 몇 년 동안 1억원을 갚았습니다.
그러면 남은 채무는 1억원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어느 날 남은 1억원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원래라면 앞으로 부모에게 지급해야 했던 1억원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과적으로 자녀의 재산상 이익이 생긴 셈입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36조는 채권자로부터 채무를 면제받거나 제3자가 채무를 인수 또는 변제해준 경우 그로 인해 얻은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을 증여재산가액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2억원을 빌릴 당시에는 정상적인 차용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남은 채무를 부모가 면제해준다면 그 시점에는 증여세 문제가 새롭게 생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증여였다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상황을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첫 번째는 처음부터 돌려받을 생각 없이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주면서 겉으로만 차용증을 작성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처음에는 실제로 돈을 빌렸고 정상적으로 갚다가 나중에 부모가 남은 채무를 없애준 경우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녀가 돈을 받았다는 점은 비슷해 보이지만 과정은 다릅니다.
두 번째 경우라면 채무를 면제받은 시점이 중요해집니다.
법에서도 채무면제에 따른 이익은 면제를 받은 날을 증여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부모·자녀 간 차용은 처음 돈을 받을 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몇 년 후 그 돈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가 은행 빚을 대신 갚아준다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상황도 있습니다.
자녀 명의의 아파트에 은행 주택담보대출 1억원이 남아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부모가 여유자금이 생겨 자녀 대신 은행에 1억원을 상환해줬습니다.
“부모에게 진 빚을 없애준 것도 아닌데 이것도 증여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36조에는 채무면제뿐 아니라 제3자가 채무를 인수하거나 대신 변제해준 경우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의 빚을 직접 없애주는 경우뿐 아니라 자녀가 갚아야 할 채무를 부모가 대신 부담하는 상황도 세금 문제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럼 남은 빚 전부에 무조건 세금이 나올까?
여기서는 다시 증여세 계산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채무면제로 얻은 이익이 증여재산가액에 해당한다고 해서 그 금액과 실제 납부할 증여세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누가 누구에게 증여했는지, 과거 10년 동안 같은 증여자로부터 받은 다른 증여재산이 있는지, 적용 가능한 증여재산공제가 얼마나 남았는지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국세청도 증여세 계산에서 동일인으로부터 증여일 전 10년 이내 받은 일정한 증여재산을 합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직계존속의 경우에는 증여자 배우자까지 동일인 범위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부모님이 5천만원 빚을 없애줬으니 세금이 얼마다.”
이렇게 바로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전에 받은 증여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없애주면 괜찮을까?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생깁니다.
2억원을 한 번에 면제하지 않고 매년 조금씩 없애주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에도 단순히 금액을 잘게 나누면 증여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증여세에는 과거 증여재산을 합산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에게 이미 현금을 받았거나 아파트 취득자금을 지원받은 적이 있다면 그 내역까지 같이 확인해야 계산이 가능합니다.
최근 국세청도 가족 간 송금과 차용증 등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속·증여세 오해를 별도로 안내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결국 차용의 마지막은 ‘상환’입니다
부모에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방법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빌렸다면 갚으면 됩니다.
그런데 집을 살 당시에는 차용이라고 해놓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갚을 생각이었는데 부모가 받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고, 부모가 자녀의 은행대출을 대신 갚아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 간 차용을 생각한다면 저는 처음 돈을 빌릴 때 세금만 계산하는 것보다 마지막에 이 돈을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까지 같이 계획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빌린 돈을 정상적으로 모두 갚을 것인지.
일부를 나중에 증여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지.
부모가 추가로 지원할 계획은 없는지.
이 흐름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 몇 년 뒤 갑자기 “그 돈 안 갚아도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차용증을 쓰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빚이 없어지는 순간까지가 하나의 거래인 셈입니다.
※ 이 글은 2026년 8월 현재 법령과 국세청 공개자료를 기준으로 일반적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실제 증여세는 채무관계, 과거 증여내역, 증여재산공제 및 구체적인 거래 사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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